
수술방 텐팅 너머로 의자에 편히 앉아 반쯤 풀린 눈으로 환자 모니터링을 하던 내 동기들.
공식적으로는 나와 똑같은 인턴 신분이지만,
나는 천생(賤生)이었던 까닭에 감히 오프를 오프라 부르지 못 하고 퇴근을 퇴근이라 부르지 못 하여 항상 가슴이 터질듯 하였다.
반면에 그들은 내가 오후 5시 반에 전화를 걸면 이미 자기 집에 누워있곤 했다.
vertebroplasty (국소마취 수술은 써저리 인턴이 환자 모니터링을 함) 때문에 ephedrine의 위치를 물으려 전화했더니,
백그라운드로 들리는 지하철 소리가 전해주는 우울감을 양껏 끌어안고
이 수술 끝나고도 3개가 더 남은 내 처지를 심하게 비관ㅋㅋㅋㅋ하기를 수차례.
도통 오지 않을 것 같던 5월이, 지구종말은 언젠가 오겠지만 내 5월은 절대 오지 않을 것 같던, 그 5월이 결국에는
인턴이 된 후 처음으로 '알람-오프' 데이가 되었다.
잠결에 눈을 떴더니 환한 아침이라 본능적으로 '늦었구나! ㅆㅂ!' 싶어서 푸드덕~ 거리며 일어나
수초 후에 사태파악이 되어서는 집 거실에 걸린 달력이 5월로 넘어간걸 발견,
한참을 쳐다보며 히죽히죽 웃어댔더랬지.
그 모습을 걱정스레 바라보시는 어마마마에게 큰 아들이 미친건 아니라고 설명을 하느라 애를 먹긴 했다만.
여하간 좋았다.
'이 정도면 인턴 할 수 있어!'란 생각도 처음으로 들었었고.
환자를 보는 것은 절대 만만한게 아니었다.
처음으로 수술장 텐팅 반대쪽에 혼자 남아 환자 바이탈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도리어 내 pulse rate가 안드로메다로 가는 느낌이 들었다.
나중에 언젠가 이날 일을 쓰겠지만, 여하간 쿵쾅쿵쾅~
혈압도 오르는 것 같아서, 환자에게 쓰려고 재놨던 labetalol을 내가 맞아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 ㅋㄷ
한번은 bowel perforation때문에 septic shock 온 환자를 내가 보지는 않고ㅋㅋ arterial sampling 심부름 했던 적이 있다.
(번외로, septic shock이 참 무서운듯.
한번 호전기미로 들어가면 잘 낫긴 하지만, 그 전까지는 정말 아무런 조치도 듣지 않는 것처럼 보이니까. ㄷㄷㄷ)
혈관이 팽창하야 BP는 낮아진 반면, 환자의 heart는 퍼져 CVP가 127(!)을 찍는 모습을 마치 어제 일처럼 기억하고 있다.
수혈하려고 달아둔 피가 들어가질 않고 역류-_-하는 충격적인 모습에
나더러 손으로 직접 짜라고-_- 쥐어준 수혈팩을 들고 몇초동안 멍하니... 있었다.
대여섯명의 마취과 의사들이 단 1초도 쉴틈없이 부지런히 일하는게 인상적이었음.
전달에 매번 내 동기들이 욕창 생길지도 모를 정도로 앉아만 있는걸 보다가 말이지. ㅎㅎ
수술 몇번 들어가보니, 환자 상태가 안드로메다로 가는건 정말 순식간이다.
마취과도 엄연히 바이탈을 다루는 과라는걸 느꼈다.
다만...
나는 별로 하고픈 마음이 없음. ㅎ
아무리 월급이 많고 free time이 확실하다 해도 말이지.



덧글
2011/06/21 01:15 # 삭제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아크페가시 2011/06/23 00:57 #
안한대두 ㅋㅋㅋ
로이스 2011/09/02 01:03 # 삭제 답글
참으로 오랜만이네요. 반갑습니다. ^^ㅋ이 포스팅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 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 했던...
길동이의 경우보다 더 가슴아픈 사연인 것 같아요. ㅠ.
나는 숨돌릴 시간도 없는데... 집에 드러누워있다니... ^ㅡ_ㅡ^
그러니까...
실험시작시간 5분 전에 사정없이 문을 잠궈버리시는 독한 교수님을 만나... ^^;
보고서 쓰느라 주로 밤을 새우던 때가 있었지요.
잠깐 졸았는데... 타이핑이 다 되어 있었던 미스테리한 경험도 하고...(귀신이 왔다갔나? ㅋ)
그 와중에 교직과목까지 듣느라 타단대까지 뛰어다니고...
그때는 걸었던 기억보다 뛰어다닌 기억이 더 많네요.ㅋ
그리하여 몸무게는 사상최하를 기록하고~
화학식 3천개를 시험친다길래...
'어이하나~♪'만 외치고 있었던~ ㅋ
물론 아크페가시님께서 하시는 노력과 고생에는 비할 수 없이 미미하나...ㅋ
그때는 나름 어서 지나갔으면 했던 고난의 시대라 생각했기에...
놀러 댕기는 아이들을 보면 이유없이 배가 아프곤 했습니다. ㅋㅋㅋ
그러나 그 시절도... 결국은 다~ 지나가더군요. ^^
경험한 것보다 경험하지 않은 게 더 많으실 터라...
앞으로 정신적 충격을 더 많이 겪으실 듯 합니다. ^^;;;
부디 잘 견디시어 인턴과정 잘 마치고 무사귀한 하실 것을 엉원하고 있겠습니다. ㅎㅎㅎ
아직 NS는 전이신가요?
아이고... 어이하나~♪ ㅎ
아크페가시 2011/09/06 00:04 #
네, 언젠가는 다 지나가겠죠.그러므로 시간이 빨리 가기를 기다리기보다는 까르페디엠하며 살아야죠. ㅎ
지나가면 다 하나의 추억일뿐인 것을. ^^